관상 일치. 직관기도.
성체성사
거룩한독서(Lectio Divina)
첫 단계 읽고 (lectio), 말씀을 듣고.
두번째 단계 묵상(meditatio) 말씀의 뜻을 새기고,
세번째 기도(oratio) 중엔 말씀이 내 가슴을 관통하면서
네번째 관상(contemplatio)에 이르면 말씀과 내가 하나되는 합일에 이릅니다.
진리의 말씀은 따질 수가 없습니다. 생로병사 불생불멸의 진리는 지성과 논리 너머의 경계입니다.
뜻
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는 행위. 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안에서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의 본성에 참여하여 친밀한 친교를 누리도록 부르시고 있다. 그 친교의 온전한 형태는 천국에서 지복직관(至福直觀)을 통하여 이루어지나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 직관능력의 씨앗을 받게 된다. 관상은 그 씨앗을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싹트게 하여 꽃피우게 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교회내 많은 성인들이 영성생활의 일치의 단계에 도달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이를 실천하였다.
관상은 염경기도나 일반적 묵상기도와 달리 단순 본질의 직관적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본질적인 것의 터득에서 오는 것이므로 직관의 기도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의 친교가 직접적이고 내재적인 일치로 발전한 나머지 하느님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 안에 특별히 긴밀한 양식으로 내재하는 하느님을 본질적으로 바라보고 직접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하느님과 친교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러 언어와 개념과 이미지 등에 매개수단을 사용한다. 그러나 친교가 깊어지고 하느님이 사람에게 가까이 현존하심에 따라 그러한 매체가 불필요해지며 마침내 하느님의 영(靈)이 사람 안에 직접 내재하여 활동하실 때에는 사람의 사고와 감정과 상상은 하느님과의 '침묵의 일치'를 방해하는 소음이 되기에 이른다. 더우기 인간의 언어와 개념 등은 하느님이 인간 안에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계시하고 활동하시려는 자유를 제한하기에 이른다. 관상은 이러한 단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관상자는 인간의 자연적인 능력을 모두 침묵시키고 단순히 하느님을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이다. 이처럼 관상을 통하여 하느님과 친밀한 친교를 체험하는 가운데 사람은 자신 안에 내재하는 하느님의 존재가 본질적인 것임을 깨닫게 된다. 하느님은 그 사람에게 도달해야 할 목적이라기 보다는 삶의 주제요 내용이며 생명의 원리가 되기에 이른다.
관상은 이에 도달하는 양식에 따라 수득적(修得的) 관상과 주부적(注賦的) 관상으로 나누어진다. 전자는 개인의 노력으로써 직관의 능력에 도달하는 것으로 능동적'관상이라고도 한다. 마음을 가다듬어 번뇌를 끊고 진리를 깊이 생각하여 무아정적(無我靜寂)의 경지에 몰입하는 불교의 선(禪)은 이에 해당한다 하겠다(비그리스도교 선언문 2). 한편 후자 즉 주부적 관상은 하느님의 은혜로 인하여 신적(神的) 영역을 체험하고 신비에 대한 깊은 깨달음을 얻는것으로 수동적 관상이라고도 한다. 일상생활 가운데 성령의 감화를 받아 하는님의 본성을 체험하는 경우가 이의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구분에 대하여 과연 인간의 노력으로 관상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의문스럽게 여기는 전해도 있어서 학설은 일치되지 않고 있다. 관상은 완덕에 도달하는 하나의 수단이지 완덕 자체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완덕에 부르시는 하느님은 일반 신자들의 일상생활이나 활동수도회의 활동생활 가운데 관상의 경지에 도달하게 도와주시기도 하고 교회내 관상기도 한다. 관상은 본직적인 것과 '단 한 가지의 필요한 것'(루가 10:41) 즉 하느님께 집중하게 함으로써 우리를 더욱 겸손하고 관대하게 하며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서 나오는 관상 및 관상기도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관상기도의 역사
동서방 그리스도교에서 관상기도의 역사는 너무 방대하고 복잡하여 짧은 지면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여기서는 단지 몇 가지 주요점들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그들이 말했던 내용의 중요성 때문에 또 관상을 이해하기 위한 본보기들로서 동방 교부들 가운데 중요한 두 인물, 즉 오리게네스와 니사의 그레고리오를 언급할 것이다. 그들은 두 주류를 형성하여 이후 영성사에 두루 영향을 끼쳤다. 후대 작가들에게 준 그들의 영향을 보고 관상에 대한 중세와 개혁 이후의 생각을 제시한 다음, 우리시대의 논의로 맺고자 한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속하는 오리게네스(185-255)는 빛의 신학자이다. 그에 의하면, 모두가 하느님의 형상과 유사성으로 존재했던 애정 어린 관상의 원시 상태가 있었다. 타락은 비록 형상의 상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느님과의 유사성의 상실이었다. 구속의 목적은 하느님과의 유사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관상의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 되돌아감에는 세 단계가 있는데, 각 단계는 점증하는 조명의 운동이다. 이 단계들은 하느님께 그리고 낙원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으로 간주된다. 오리게네스는 이것을 이집트에서 약속된 땅으로 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에 비유한다. 첫째, 거기에는 ‘윤리적인 조명’이 있는데, 이는 죄로부터 멀어져 덕들로 돌아서는 운동이다(praxis). 그런 다음 ‘자연에 대한 관상’의 단계(theōria)가 있다. 이 단계에서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 창조된 세계를 보게 된다. 마지막으로 ‘하느님 자신에 대한 관상’(theologia)이 있는데, 이는 그 기원으로 되돌아감이며 하느님과의 유사성의 회복이다. 이것은 점점 더 큰 빛을 향한 점진적인 운동이다. 오리게네스는 영혼의 어둔 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거나 적어도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까빠도치아 교부들 가운데 하나인 니사의 그레고리오(335-395)는 관상적인 이해에 대한 다른 주류를 대표한다. 그것은 특별히 그의 작품「모세의 생애」에서 잘 나타난다. 거기서 그는 오리게네스가 했던 것처럼 세 가지 단계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단계들은 역순으로 되어있다. 즉 빛에서 어둠으로 나아가는 운동이다.「모세의 생애」는 이 운동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먼저 출애굽기 3장의 불타는 덤불 이야기에서 모세의 빛 체험(phōs)이 있다. 그 다음 그의 두 번의 등정이 있는데, 매번 보다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첫 번째는 출애굽기 19장에서 구름의 어둠(nephelē)속으로 나아가는 등정이며, 두 번째는 출애굽기 33장에서 하느님이 미지의 분으로서 체험되는 짙은 어둠(gnophos)속으로의 등정이다.
오리게네스와 그레고리오에 의해서 대표되는 관상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법은 ‘긍정의 길’(kataphatic way)과 ‘부정의 길’(apophatic way)로 알려져 왔다. 전자는 오리게네스에게서 본 바와 같이 ‘빛의 길’이다. 인간은 피조물들 안에서 보이는 모든 완전한 것들을 하느님의 것으로 긍정함으로써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모성, 부성, 정의, 진실, 동정에 대한 인간의 체험들은 인간이 창조된 세계를 통하여 하느님의 실재를 응시할 수 있는 여러 다양한 창문들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들은 제한된다. 그것들은 우리에게 하느님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결코 하느님의 가장 내밀한 실제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니사의 그레고리오가 주장한 하느님에 대해서 생각하는 또 다른 길, 즉 부정의 길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어떤 개념들이나 생각들, 혹은 어떤 단어들이나 상징들도 하느님의 실재 자체에는 이를 수 없다. 그 실재에 도달하기 위해서 인간은 ‘혼자 힘으로’ 가야한다. 만일 그가 원한다면 모든 개념상의 껍데기를 제거하고 어둠 속으로 혼자서 가야한다. 인간은 정신의 빛을 밝히고 사랑을 통해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간다.
비록 부정의 길이 어둠의 길이라 할지라도, 관상가들은 때때로 ‘부정의 빛’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전통은 ‘어두운 빛’과 ‘눈부신 어둠’과 같은 역설적인 표현들로 그득하다. 왜냐하면 부정의 길로 이룩한 참된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 표현을 허용하지 않는 인식이다. 결과적으로 부정의 길은 종종 ‘알지 못함으로써 아는 것’으로서 언급된다.
영성생활의 흥미로운 ‘규칙’가운데 하나는 교부학자 쟝 다니엘루 (Jean Daniélou)가 ‘에펙타시스’(epektasis, 진보)라고 부른 것으로서 이는 니사의 그레고리오에 의해서 발전되었지만, 거기에는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무언가가 있다. 이것은 실제로 계속되지는 않지만, 결코 노력을 중단하지 않고 완전해지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레고리오에게 있어 완전을 향한 부단한 진보는 플라톤적인 ‘정적(靜的) 일치’를 대체한다.
오리게네스와 그레고리오가 말하는 영적 진보의 세 단계, 곧 정화의 길, 조명의 길, 그리고 일치의 길은 영성 전통 안에서 계속해서 그 고유한 위치를 차지해왔다. 게다가 그들이 이 세 단계들에 포함된 등정의 과정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용했던 두 가지 상징들은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쳐왔다. 그것들은 곧 ‘산’과 ‘사다리’의 상징들이다. 전자는 후에 단테, 십자가의 성 요한, 토머스 머튼이 사용하였고, 후자는 베텔에서의 야곱의 꿈에 바탕을 두고 있다(창세 28,10-15). 12세기 카르투시오회 원장 귀고 2세(+1188)는 사다리의 상징을 사용했던 여러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귀고는「관상생활에 관한 서한」에서 관상생활을 위한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방법인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를 요약하고 있다. 렉시오 디비나는 세기를 통해서 무수한 익명의 수도승들의 영성을 살찌워왔다. 귀고의 사다리에는 단지 4개의 계단이 있지만, 그것은 지상에서부터 시작하여 구름을 관통하여 천국의 비밀들을 향해 나아가는 놀라운 사다리이다. 귀고는 사다리의 단계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독서(lectio)는 성서에 대한 주의 깊은 연구로서 여기서 우리의 모든 주의를 기울인다. 묵상(meditatio)은 성서를 음미하고 이성의 도움으로 거기에 감추어진 진리를 찾고자 노력하는 정신의 활동이다. 기도(oratio)는 우리를 악에서 구하고 우리가 좋은 것을 얻도록 하느님께 청하면서 그분께 마음을 돌리는 의향이다. 관상(comtemplatio)은 그것 자체를 뛰어넘어 영원한 감미로움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식으로 하느님께 마을을 경건하게 들어올리는 것이다.”(PL 40,998)
오리게네스와 그리고리오 외에도 중세 영성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중요한 원천은 약 6세기에 쓰인 익명의 작품들이었다. 그러나 아레오파고의 디오니시오는 이 작품들을 바울로의 아테네에서의 개종 당시의 것으로 돌렸다. 그의 작품「하느님의 이름들」은 하느님의 선으로 시작하여 그분의 불변성으로 끝나면서 하느님의 속성들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그것은, 비록 우리의 모든 단언들은 본질적으로 알 수 없는 하느님께 미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더라도, 하느님에 대해서 단언하면서 긍정의 접근을 기술하고 있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교 기도에 대한 그의 마지막 말마디는 부정의 전통을 지지하는 또 다른 작품「신비 신학」에서 나타나는 이유이다. 이 작품은 기도와 권고의 말로 시작한다.
디오니시오의 작품들은 요한 스코투스(John Scotus Erigena: 810-877경)의 라틴어 번역들을 통하여 9세기에 서방에, 그리고「무지의 구름」을 쓴 익명의 저자의 번역을 통해서 14세기에 영국에 알려지게 되었다. 뒤의 작품은 14세기 영국 신비주의의 한 흐름이었다.
14세기에는 또한 라인 지역과 네덜란드에서 번성하였던 관상기도의 삶에 관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도미니고회 설교가이자 위대한 사변 신비가였던 마이스터 엑크하르트(Meister Eckhart: 1260-1327)의 것들이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어두운 길에 대한 대담한 설교는 ‘하느님의 친구들’이라고 불렸던 추종자들의 평신도 운동 안에서 열매를 맺었다. 역시 도미니꼬회원이자 존경받은 설교가였던 요한 타울러(John Tauler: 1300-1361)와 헨리 수소(Henry Suso: 1295-1365) 또한 ‘하느님의 친구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들 가운데 가장 깊고 가장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설교를 했던 에크하르트는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이야기 하였다. 그는 말하였다. “영혼 안에는 창조되지 않은 어떤 것, 신적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감추어진 어둠이며 절대로 알려지지 않다. 그러나 인간 인격 안에는 그 신적 원천에로 되돌아가도록 운명지어진 신적인 ‘불꽃’이 있다. 그가 죽은 후, 비록 그의 고발자들이 그가 말하는 바를 이해하였는지는 의심스럽다 할지라도, 그의 명제들 가운데 몇 가지는 이단적인 것으로서 단죄되었다.
16세기의 스페인은 관상 기도의 삶에 인상적인 증거를 낳았다. 로욜라의 이냐시오 (1491-1556)는 깊은 관상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의 영신수련은 그들을 그러한 기도로 형성했던 사람들을 지도하기 위하여 의도되었다. 그 수련은 이후 영성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냐시오의 시대 이후 영신수련의 의미가 종종 잘못 해석되었다는 점은 지적된 사실이다. 이냐시오 영성의 참된 관상적 차원들을 회복하는 일이 20세기의 과제로 주어져 왔다.
아빌라의 데레사 (1515-1582)와 십자가의 성 요한 (1542-1591)은 함께 카르멜회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각각은 관상생활에 관하여 눈부신 글들을 썼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스콜라 신학으로 잘 훈련되었고 천부적인 서정시인이었다.「카르멜 산의 등정」과 「영혼의 어둔 밤」은 가장 영향력 있는 그의 산문 작품들이다. 이 두 작품은 영적인 등정을 하면서 이루어져야 하는 이탈의 다양한 차원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는 확실히 관상 기도에 있어 부정의(apophatic) 전통에 서 있었다. 공식적인 교육을 별로 받지 못했던 데레사는 기도 중에 그녀가 체험한 바를 적었다. 그녀는 실천적인 여성이자 탁월한 관상가였다. 그녀의「생애」,「영혼의 성」,「완덕의 길」은 긍정의(kataphatic) 전통에 대한 제시에 있어 비할 나위 없다. 카르멜의 이 두 성인들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지만, 그들의 목적은 동일하였는데, 곧 하느님과의 일치였다.
몇 가지 예외들과 수도승생활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은 별개로 하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개혁 이후의 시기는 관상에 있어 불모의 시기이자 부정의 전통을 지지하는데 있어 위기의 시대로 간주되어야 한다. 정적주의(하느님과의 거짓된 신비적 일치를 제외한 모든 형태의 금욕주의와 기도를 거부하였던 한 이단으로서 이들은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분리시켰다)의 망령이 트리엔트 공의회 (1545년에 소집된)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기도하는 사람들의 삶을 위협하였다. 십자가의 성 요한과 아빌라의 데레사, 그리고 로욜라의 이냐시오와 같은 관상가들은 때때로 종교재판소의 분노를 살까하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수도승 전통 밖에서 관상은 20세기까지 서방 그리스도교의 삶 안에서 별로 강조되어 오지 않았다. 영적인 공허와 제2차 세계대전의 물결 속에서 보다 높은 정신적 가치들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관상적 삶의 양식에 대한 흥미가 되살아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서 잃고 있다고 느꼈던 영적인 차원을 위해 동양의 종교들에 눈을 돌렸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존재하는 영적인 삶의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난 세기에 이 탐구에 있어서 유일한, 하지만 가장 영향력 있던 지도자는 미국 게세마니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던 토머스 머튼 (1915-1968)이다.「관상의 씨」와「칠층산」과 같은 몇몇 그의 초기 작품들은 진정한 관상을 수도승생활로 제한하는 관상에 대한 엘리트적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머튼은 ‘세상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수도승들처럼 되도록 노력하라고 초대한다. 그들은 적어도 ‘가면을 쓴 관상가들’일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바를 실제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그들의 삶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사람들이다.